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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회 맑스코뮤날레 슬로건의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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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은 가능한가: 맑스주의와 일상의 변혁>



     7회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심광현

 

 



이번 대회의 주제는 그동안 다루어 온 거시적인 주제들, ‘지구화 시대 맑스의 현재성’(2003년 제1), ‘맑스, 왜 희망인가?’(2005년 제2), ‘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적 세계화’(2007년 제3), ‘맑스주의와 정치’(2009년 제4), ‘현대자본주의와 생명’(2011년 제5),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좌파의 대안’(2013년 제6)과는 다르게, ‘일상생활이라는 미시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그간의 거시적인 주제로부터 미시적인 주제로 초점을 이동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이 주제는 이전의 흐름에서 갑자기 초점을 바꾼 전환이 아니라, 2013년 제6회 대회에서 제안된 주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분석)와 좌파의 대안>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구체화 해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6회 대회에서는 3일간의 발표와 토론 결과를 폐막식 때 집약하여 대회 개최 이후 처음으로 공동대표단/집행위원회 명의로 <대회 선언문>을 채택함으로써 그간 맑스코뮤날레 내부에서 펼쳐져 온 다양한 이론적-실천적 과제들을 공동 결의 형식으로 묶어낸 바 있다. 그 선언에서 밝힌 3 가지 실천 과제는, “세계자본주의-세계공황-세계혁명 테제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사상을 새롭게 점검하고 구체화”(과제-1)하면서 반자본주의/반가부장체제 운동의 대중적 확산을 위한 다양한 실천과 조직화”(과제-3)를 위해 --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연대와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한 다양한 실험과 실천에 적극 동참한다”(과제-2)는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는 지난 10년 간 본 대회에서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던 맑스주의적 이론과 실천의 과제를 과제-1과 과제-3으로 <압축, 계승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이를 --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연대와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한 실험과 실천”(과제-2)으로 <확장해 나간다는 의미>가 동시에 함축되어 있다. 이와 같은 <계승과 확장>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가능하겠지만, 지난 2년 동안 집행위원회에서는 아래로부터”, “운동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한 실험과 실천의 길을 <일상의 변혁>에서부터 찾아 나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제7회 대회의 주제를 <다른 삶은 가능한가: 맑스주의와 일상의 변혁>으로 확정하게 되었다.


둘째로, 이 주제는 이번에 처음 제안된 것이 아니라 이미 2012년 제6회 대회의 주제 선정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여러 단체들로부터 제안되었던 것인데, 2010~12년 사이에 심화, 확산되고 있던 세계자본주의 위기라는 당면 문제와 --보라 패러다임과 같은 새로운 주제를 먼저 다룬 후 차기에 다루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로 유예되었다는 점에서 이를테면 예약된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6회 대회에서 천명된 바와 같이 향후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그 대안은 오직 대안적 삶의 가치를 체화한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새로운 사회주의를 형성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할 때, 삶의 저변을 이루는 일상생활 자체부터 반자본적/반가부장적/생태적인 가치 체현의 장으로 바꾸어나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착취와 폭력의 강도가 높아지는 데 반해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은 약화/해체 일로를 거듭해 온 역설의 비밀은 - 최근의 여러 비판적 성찰들이 주목하고 있듯이 - 아무리 국가/자본 권력과 투쟁하고자 해도 일상생활과 감성 자체에 깊이 뿌리내려 발목을 잡고 있는 자본주의적/가부장적/반생태적인 습속의 강력한 관성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깨달음은 맑스가 포이에르바하 테제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감성적 실천>이라는 토대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은 채 국가/자본의 구조와 투쟁할 경우 사상누각에 이를 뿐이라는 교훈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이루어낸 복잡한 이론적 연구와 실천적 투쟁들이 무효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의 변혁을 위한 이론적-실천적 투쟁들이 유의미하려면 그런 노력들이 반드시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와 주변을 변혁하려는 감성적 실천과 일치, 순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3>에서 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관한 유물론적 교의는, 환경이 인간에 의해 변화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교의는 사회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를 다른 것 위에 놓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강력히 비판하면서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활동 또는 자기 변화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맞물려 심화되고 있는 좌파운동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 비록 늦었다 할지라도 - 이제부터라도 삶의 저변을 이루는 일상의 생활환경의 변화와 자기 변화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사회환경 전체를 변혁하여 대안세계를 만들어가는 거시적 혁명은 당장 실행되기 어렵지만, 스스로 대안적 가치를 발견하고 체화하면서 자기 자신과 일상생활을 변혁해 나가는 일은 그 중요성을 깨닫기만 한다면, “지금 여기에서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이것이 바로, 맑스가 코뮤니즘이란 우리에게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 혹은 현실이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코뮤니즘을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이라 부른다고 말했을 때 현실의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일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사회상태를 <일거에> 폐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과 주변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자본주의적/가부장적/반생태적 이데올로기와 습관들을 <하루하루> 폐기해 나가면서 대안적인 가치를 체화하고 실천하는 방향으로 일상의 생활환경과 자기 자신과 이웃의 변화를 일치시키기 위한 실험에 당장 착수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실험들을 통해 그간 연구하고 전망해온 거시적인 사회환경의 구조 변혁 과정과 대안적 삶의 방식/내용들을 조정하고 보완하는 피드백 과정을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환경의 변화와 자기 변화를 일치시키는 혁명적 실천의 과정에 더욱 밀착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제7회 대회의 주제 <다른 삶은 가능한가: 맑스주의와 일상의 변혁>은 그간 분리된 방식으로 논의되고 별개로 실천되어 왔던 환경의 변화와 자기 변화를 위한 노력들을 새롭게 일치시킴으로써 본 대회가 다루는 주제의 추상도가 높아 현장이나 대중의 삶과 괴리되었다는 저간의 비판을 넘어설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자본의 착취/수탈과 국가의 억압 강도가 날로 극심해가고, 민주주의의 최소한도조차 막무가내로 유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상의 변혁을 논하는 일은 긴박한 정세를 외면하고 투쟁의 전선에서 후퇴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장 내에서의 착취를 넘어서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공공영역의 사유화와 금융화 기제를 통한 직간접 수탈은 물론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와 같이 생명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들로 이어지는 자본권력의 폭주 메커니즘을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는 요청 앞에서 일상의 변혁이란 한가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파괴행위에 맞선 대부분의 투쟁들이 일상생활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재생산 조건을 사수하기 위한 방어 투쟁이라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게다가 방어 투쟁은 자본/권력의 선제공격을 전제로 하기에 주도권을 갖는 투쟁도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수세적인 방어투쟁에서 벗어나 운동의 능동성과 자기 주도성을 회복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일상을 자본이 요구하는 경쟁력 있는 노동력 재생산의 장으로 머물게 하는 대신, 비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만들어 나갈 새로운 주체형성의 실험의 장으로 전화시킬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민중 스스로 대안적인 가치(--보라적 가치)를 체화할 수 있는 자기 변화와 연대의 문화와 교육을 자치적으로 수행하면서 대안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생활조건을 창의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준비가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간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온 것은 바로 이런 질문과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불충분하거나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운동이 수십 년 전의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특별히 다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런 질문이 아닐까? 일상의 변혁이라는 문제의식에는 이렇게 방어투쟁과 더불어 운동의 능동적인 자기 전환이라는 차원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현재와 같이 심화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의 시대가 요구하는 일상의 변혁이란 곧 현재 상태와 싸우면서 장기적으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건설해간다는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의 주제의 의미가 이런 정도의 간략한 제시에 국한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상기한 내용은 대회 준비 과정에서 있었던 집행위원회의 다양한 토론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앞으로 다채로운 발표와 토론을 통해 본 대회의 주제가 보다 폭넓고 깊게 논구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술해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초안]


7회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회는 20141년 간 열띤 논의를 거쳐 20155월에 개최될 제7회 맑스코뮤날레의 전제 주제를 <다른 삶은 가능한가: 맑스주의와 일상의 변혁>으로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는 그동안 맑스코뮤날레에서 다루어온 거시적인 주제들1<지구화 시대 맑스의 현재성>(2003), 2<맑스, 왜 희망인가?>(2005), 3<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적 세계화>(2007), 4<맑스주의와 정치>(2009), <현대자본주의와 생명>(2011),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좌파의 대안>(2013) 과는 다르게 일상 생활이라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영역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에서 이렇게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초점을 이동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 주제는 이전의 흐름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전환이라기보다는 (아래와 같은 맥락에서) 2013년 제6회 대회에서 제안된 주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분석)와 좌파의 대안>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구체화 해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6회 대회에서는 3일간의 발표와 토론 결과를 폐막식 때 집약하여 대회 개최 이후 처음으로 공동대표단/집행위원회 명의로 <대회 선언문>을 채택함으로써 그간 맑스코뮤날레 내부에서 펼쳐져 온 다양한 이론적-실천적 과제들을 공동의 결의로 묶어낼 수 있는 중요한 성과를 거둔 바 있습니다. 특히 선언에서 밝힌 3가지 실천 과제는 별개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 세계공황-세계혁명 테제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사상을 새롭게 점검하고 구체화”[과제 1]하면서 반자본주의/반가부장체제 운동의 대중적 확산을 위한 다양한 실천과 조직화”[과제 3]를 위해 --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연대와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한 다양한 실험과 실천에 적극 동참한다”[과제 3]는 형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난 10년 간 본 대회에서 다양하게 논의된 맑스주의적 이론과 실천의 과제를 과제 1과 과제 3으로 압축, 계승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향후 --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연대와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한 실험과 실천”[과제 2]으로 확장한다는 의미가 동시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계승과 확장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가능하겠지만, 지난 1년 동안 집행위원회에서는 아래로부터”, “운동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한 실험과 실천의 길을 일상의 변혁에서 찾아 나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제7회 대회의 슬로건을 <다른 삶은 가능한가: 맑스주의와 일상의 변혁>으로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 주제는 금년에 처음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라 이미 2012년 제6회 대회의 주제 선정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여러 단체들로부터 제안되어 호응을 받았지만 2010~2012년 사이에 심화, 확산되고 있는 세계자본주의 위기라는 당면한 문제와 --보라 패러다임과 같은 새로운 주제를 연결하고 나서 차기에 다루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로 유예되었다는 점에서 이를테면 예약된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약된 주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6회 대회에서 제시된 과제를 구체화한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6회 대회에서 천명된 바와 같이 향후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그 대안은 오직 대안적 삶의 가치를 체화한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새로운 사회주의를 형성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할 때, 삶의 저변을 이루는 일상생활 자체부터 반자본적/반 가부장적/생태적인 가치 체현의 장으로 바꾸어나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모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착취와 폭력의 강도가 높아지는 데 반해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은 약화/해체 일로를 거듭해 온 역설의 비밀은 최근의 여러 비판적 성찰들이 주목하고 있듯이 그동안 진보적 지식인은 물론 노동자-민중이 아무리 권력과 강력하게 맞서고자 해도 자신들의 일상생활과 감성 자체에 깊이 뿌리내린 자본주의적/가부장적/반 생태적인 아비투스(habitus)의 강력한 관성에 묶여 있었다는 점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맑스가 포이에르바하 테제(Thesen über Feuerbach)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감성적 실천이라는 토대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은 채 국가/자본의 구조와 투쟁한다는 것은 결국 사상누각에 이를 뿐이라는 교훈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이루어낸 복잡한 이론적 연구와 실천적 투쟁들이 무효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의 변혁을 위한 이론적-실천적 투쟁들이 유의미하려면 그런 노력들이 반드시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를 변혁하려는 감성적 실천과 일치순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3>에서 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관한 유물론적 교의는, 환경이 인간에 의해 변화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교의는 사회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를 다른 것 위에 놓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강력히 비판하면서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활동 또는 자기 변화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맞물려 심화되고 있는 좌파운동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비록 늦었다 할지라도 이제부터 삶의 저변을 이루는 일상의 생활환경의 변화와 자기 변화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사회 환경을 변혁하여 대안세계를 만들어가는 거시적인 혁명은 당장 실행하기 어렵지만, 스스로 대안적인 가치를 체화하면서 자기 자신의 일상생활 자체를 변혁해 나가는 일은 그 중요성을 깨닫기만 한다면 지금 여기에서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맑스가 코뮤니즘이란 우리에게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 혹은 현실이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코뮤니즘을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이라 부른다고 말했을 때 그 현실의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일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사회상태를 일거에 폐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과 주변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자본주의적/가부장적/반생태적 이데올로기와 습관들을 하루하루 폐기해 나가면서 대안적인 가치를 체화하고 실천하는 방향으로 일상의 생활환경과 자기 자신과 이웃의 변화를 일치시키기 위한 실험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실험들을 통해 그간 연구하고 전망해온 거시적인 사회 환경의 구조 변혁 과정과 대안적 삶의 방식/내용들을 조정하고 보완하는 피드백 과정을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환경의 변화와 자기 변화를 일치시키는 혁명적 실천의 과정에 더욱 밀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제7회 대회의 주제 <다른 삶은 가능한가: 맑스주의와 일상의 변혁>은 그간 분리된 방식으로 논의되고 별개로 실천되어 왔던 환경의 변화와 자기 변화를 위한 노력들을 새롭게 일치시킴으로써 본 대회가 다루는 주제의 추상도가 높아 현장이나 대중의 삶과 괴리되었다는 저간의 비판을 넘어설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게 됩니다.


물론, 국내외적으로 자본/국가의 착취/수탈의 강도가 날로 극심해져가고 민주주의의 최소한도조차 막무가내로 유린되고 현 상황에서 일상의 변혁을 논하는 일은 긴박한 정세를 외면하고 투쟁의 전선에서 후퇴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변혁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에는 두 가지 상이한 차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1) 그 하나는 당면 투쟁의 차원입니다. 오늘날 일상의 생활세계 자체가 노동자-민중의 생존 조건을 파괴하고 악화시키는 다양한 폭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침윤되고 있기 때문에, 일상의 변혁에는 그런 폭력들과의 효과적인 투쟁이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2) 그러나 일상의 변혁이 이런 투쟁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노동자-민중 스스로 대안적인 가치(--보라적 가치)를 체화할 수 있는 자기 변화와 연대의 문화와 교육을 자치적으로 수행하면서 대안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생활조건을 창의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준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간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온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차원을 위한 노력이 불충분하거나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운동이 수십 년 전의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특별히 다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두 번째 차원일 것입니다. 876월 항쟁과 88년 노동자 대투쟁이 그 시기에 용솟음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부터 오래 동안 일상생활의 변화와 자기변화를 일치시키기 위한 긴 노력이 축적되어 왔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제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일상의 변혁에는 이런 두 가지 차원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현재와 같이 심화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의 시대가 요구하는 일상의 변혁이란 곧 현재 상태와 싸우면서 장기적으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건설해간다는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7회 대회 주제의 의미는 상기한 바에 제한될 것이 아니라 이후 대회 참여자들 간의 적극적 발표와 토론을 통해 보다 폭넓고 깊게 논구될 것이라고 봅니다.